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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통일준비11] 문명격차와 통일준비 등록일 2017.12.06
글쓴이 통일전략연구소 조회 459
[통일준비11] 문명격차와 통일준비
김윤태(통일전략연구소 소장, 통일학 박사)

통일에 있어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일까? 흔히 막대한 통일비용이라 생각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은 남과 북의 심각한 문명격차로 인한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는 것이다. 물론 통일비용은 한국경제에 상당한 부담과 한국민의 복지비용 감소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통일비용은 예산이든 국채발행이든 정해진 범위 내에서 지출할 수밖에 없다. 또 남과 북의 복지 수준에 차별을 두는 등의 방안을 통해 비용 자체를 줄일 수도 있다. 통일비용 문제는 조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며 장기적으로 통일한국의 경제발전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명격차 문제는 단시일 내에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지난 70여년 이상 남과 북은 서로 다른 사회체제를 추구했고 이로 인해 심각한 문명격차가 발생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 근대문명을 적극 수용했다. 건국과 4.19혁명, 경제발전, 광주민주화운동, 80년대의 고도성장, 87년 민주화운동과 이후 평화적인 정권교체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근대문명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한국민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전근대적 의식을 극복하고 자유와 법치, 인권, 책임, 다양성, 공동체윤리 등 근대적 시민의식을 갖게 되었고 문명사회를 이루었다. 이런 과정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으며 지금의 대한민국은 70년 전과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다. 

반대로 북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 근대문명을 경험하지 못했다. 물론 사회주의도 근대문명의 일부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은 이마저도 가장 후진적인 스탈린식 독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김일성 왕조국가로 변모하였다. 오히려 일제시대의 문명보다 후퇴했고 일정부분에 있어서는 조선시대의 왕조국가와 비슷하거나 못한 수준으로까지 퇴보했다. 이는 북한사회의 현실에서 여실히 잘 나타나고 있다. 

근대문명의 상징 중 하나가 인권인데 북한의 인권상황은 처참 그 자체이다. 정치범수용소의 극단적인 상황은 논외로 하더라도 북한 일반 사회의 인권의식도 열악하긴 매한가지다. 또 북한은 봉건사회의 상징인 신분제도와 연좌제가 유지되는 사회이다. 최근 시장화의 진전으로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신분제도는 뿌리 깊이 남아 있다. 북한에서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국제사회의 조롱감이 된 3대세습이 북한 주민들에게 큰 거부감이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문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법치주의도 매우 취약하다. 북한에도 형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수령의 지시가 우선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법을 알 필요도 없으며 알 방법도 없다. 대신 수령의 교시라는 이름으로 내려오는 상부의 지시를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가가 최우선적인 사회규범이다. 

북한 주민들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다양성과 포용능력도 취약하다. 선악구분과 피아구분이 매우 명확한데 북한이탈주민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 중에 남한 사람들과 말하다보면 답답해서 속이 터진다는 게 있다.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것이지 뭘 그렇게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두루뭉술하게 말하냐는 것이다. 북한에선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교육받는 것이 바로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다. 아군이 아닌 상대는 절대악으로 규정짓고 투쟁해야 할 대상이 된다. 북한에서의 권력투쟁이나 생존경쟁이 매우 폭력적이고 극단적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비록 독재사회의 강력한 폭압에 의해 억눌려 있지만 그것이 사라졌을 때 북한 주민의 요구가 폭력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이러한 문명격차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교육을 통해 개선을 꾀할 수는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이미 가치관이 형성된 성인들이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여 의식이 변하는 건 극히 어렵다. 또 아무리 민주주의나 인권, 법치주의,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에 대해 집중적인 교육을 한다 해도 근대적 시민의식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한국민들의 근대의식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형성돼 발전해왔다. 다른 문명선진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문명수준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며 남과 북은 상당한 기간 이러한 문명격차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만일 남과 북이 통일을 추진하지 않는다면 이런 문명격차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심각한 갈등이나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과 북이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문명격차는 상당한 갈등과 정치적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급변사태가 발생해 갑작스런 통일이 이뤄진다면 북한 지역에 대한 통치는 한국정부가 주도하게 된다. 이 경우 문명격차를 무시하고 한국의 제도와 체제를 북한 지역에 시행한다면 북한 지역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남한에선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법규조차 북한에선 생소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북한 주민들은 거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상당한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문명격차를 무시하거나 쉽게 극복될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명격차 문제를 통일준비의 중요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준비를 통해 통일 과정에서의 갈등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통일 이후에 북한 지역 주민들의 기본적 인권과 복지는 보장해야 하지만 남한 지역 수준으로 억지로 꿰맞추는 건 재정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 지역의 장기적인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현재 문명수준에 맞는, 북한적 특수성을 고려한 발전전략과 정책을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당장 다음 달 통일될 수도 있고 5년 후, 1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기보다 더 중요한 건 통일이 남과 북 모든 주민들의 삶과 통일한국의 미래를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남과 북의 문명격차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민과 연구가 지금부터라도 집중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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