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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기고]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 논의는 허구 등록일 2016.07.05
글쓴이 통일전략연구소 조회 1258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 논의는 허구


- 김윤태(통일전략연구소 소장)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를 병행 추진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2월 17일 호주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중국은 각국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정전협정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월 21일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논의, 즉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도 지난 5월 8일 제7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결정서’에서 핵 보유국임을 천명하며 미국이 북한 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북한은 평화공세가 필요할 때마다 평화협정 체결을 수시로 주장해 왔다.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갖는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평화협정 체결 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다. 평화협정은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수차례의 시도와 노력이 전개되었다. 1954년 ‘제네바 정치회의’에서 처음 논의된 이후, 2005년 북한이 핵 포기를 약속하면서 체결한 9.19공동성명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선언에도 평화체제 구축문제가 논의된 바 있었지만 실질적인 협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남북 또는 북미 간의 인식 차이가 현격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한반도 안보상황이 평화협정 논의를 어렵게 해 왔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약속받는 것이다.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패배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인 북한의 유일한 관심은 체제유지 밖에 없다. 북한정권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북미간의 평화협정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북미 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으로부터 체제위협이 사라질 것이고, 체제정당성 또한 인정받게 되어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을 담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평화협정 카드를 체제유지를 위한 안전보장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은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들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을 하는 문서에 불과하다. 때문에 북한은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이나 남북한의 평화정착을 위한 군축논의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보장해주는 평화협정 체결에만 관심이 있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에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장에 핵포기 없는 평화협정 체결을 미국이 수용할리 없고, 수용가능성이 없는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우며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는 거리가 멀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말로는 내세우고 있지만, 내심 평화협정 체결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오히려 평화협정 논의가 북한체제의 변화를 가속화시켜 원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외부와의 긴장조성이 체제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에 과도한 평화논의는 정권유지의 기반을 뿌리 채 흔들 수 있어 선택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분단의 유지가 더 효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북한이 평화협정 카드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정권의 생존을 위해 외부압박의 방어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한 전술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을 피하는데 평화공세만큼 효과적인 전술이 없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평화공세를 지속할 뿐, 평화협정 체결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


평화협정의 전제조건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전제조건에 대해 남북한의 입장은 상이하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협정은 핵보유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다. 핵은 자위적 수단이기 때문에 평화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별개의 문제이며 자신들은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핵군축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한다.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핵무기를 체제보호 수단으로 계속 활용할 수 있고, 남북한 간의 군사적 우위도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핵심 원인이 주한미군 주둔에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가 평화협정 체결의 중요한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주한미군의 존재가 평화협정의 걸림돌이고 주한미군이 있는 한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평화협정을 통해 유엔사를 해체시키고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할 명분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남아있게 될 경우 남북한의 군사적 안보 불균형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남한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는 한반도 안보의 가장 큰 장애물인 북한 핵문제 해결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한다. 평화협정 체결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등 충분한 여건이 성숙된 이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북핵문제 해결 없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장애요인이 북한 핵이고 핵폐기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조건에서 평화협정 체결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은 분리해서 논의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에 대해서 비핵화 없는 가짜 평화공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핵보유와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요구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진정성이 결여된 위장 평화공세일 뿐 제고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대해서도 한·미 양자 간의 논의사항이고 대한민국의 안보와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동맹은 유지되고 발전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평화협정의 당사자 문제


평화협정 논의가 본격화 되면 가장 먼저 대두할 문제는 협정체결의 당사자 문제가 될 것이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남북 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다가 1974년 이후에는 북미간의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1984년에는 평화협정은 북미간에 체결하고 남북간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며 남한의 참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는 자신들과 미국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가 북한과 중국군, UN군사령관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주한미군이 남한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고 주한미군의 존재가 북한체제의 위협요인이기 때문에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미국과 북한이 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남한은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남북한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한을 평화협정의 당사자에서 배제하려는 북한의 주장은 비현실적이고 남한이 전쟁의 당사자였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논의의 주체인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평화협정 논의가 한국전쟁에 대한 형식적인 종전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 논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남한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남북한 간의 평화협정 논의가 단순한 과거의 청산으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에서 남한을 배제하려는 북한의 태도는 그간의 남북 간 합의와도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북한은 평화협정 논의 초기에 남북한을 당사자로 주장한 바 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남북한과 미국의 3자회담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은 1991년 12월 13일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와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10.4선언에서도 남한과의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를 직·간접적으로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남북이 평화협정의 당사자로서 서명하고, 미국과 중국 등 유관국이 이를 보증하는 역할을 하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평화공세와 대응전략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비난과 강력한 제재에 직면해 있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에 대한 초점을 분산시키고 한미동맹의 결속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평화협정 카드이다. 중국까지 적극 가담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느슨하게 하고 통미봉남(通美封南)의 구도를 만들어 한미동맹의 틀을 흔들 수 있는 ‘다목적 카드’이다. 더 나아가 남남갈등까지 유발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이 북핵문제의 돌파구 마련에 고심하고 있고 중국 또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패키지(package)로 묶어 북한을 핵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으니 북한으로서는 이를 적극 활용하는 전술이 나쁘지 않다.


북한은 핵포기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논의에는 참여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협정 체결이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사 그러한 논의에 일시적으로 참여한다 할지라도 언제든지 판을 깨고 협상장을 뛰쳐나갈 것이 자명하다.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가능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 희망사항일 뿐이다. 북한이 평화협정 체결 의지가 없는 조건에서 자칫 소모적인 논쟁에만 집중하다 결국 시간만 허비하고 북한의 꼼수에 놀아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신뢰 없는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의 안보를 근본적으로 담보하는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 북한이 법적인 몇 가지 문구에 구애 받을 리 없고 언제든지 어겨버리면 그만이다.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평화협정 문서보다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본질적 자세 변화가 동반될 때 가능하다. 비핵화 없는 평화협정 논의는 허구(虛構)이다.


* 출처: 자유마당, 2016년 7월호 기고글

http://www.koreaff.or.kr/pds/view.php?idx=2236&page=1&section=학술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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